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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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에서 백두산까지,그 가슴벅찼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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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재관 댓글 1건 조회 12,007회 작성일 08-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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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에서 백두산까지, 그 가슴 벅찼던 순간들..

2007년 6월1일~6월6일 ‘제2회 압록강 마라톤 대회’ 출전의 SNB여행사 단원으로 중국의 만주지역(정확히는 중국 단동의 압록강 연안에서 백두산까지)을 답사하고 돌아왔습니다.
<그간의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서술하겠습니다.>

6.1 金. 흐리다.
인천 연안부두 국제 여객선 터미널까지 닿는데 걸리는 시간을 모르는 까닭에 11시 30분 일산집 출발. 동인천역에서 12번. 24번 버스가 연안부두까지 나가는데 소요시간은 30분정도(근처 카메라 집에서 필름 카메라의 건전기 구입. 여행정보 수집) 전절<동인천역>에서 연안부두까지 거리는 멀지 않아도 교통혼잡 때문에 길에 흘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국제선 여객터미널 집결시각 오후3시.
여객터미널에는 오후2시에 도착한 덕분에 근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전주식당, 콩국수 ₩5,000>
그런데 공교롭게도 가게 주인 또한 Full Course를 주파하는 마라톤 맨.
소속은 ‘카톨릭 마라톤’이었다.
배의 출항시각 17:50. 명칭:중국선적의 Ferry ‘동방명주’호 총톤수:10,800t(속도:17노트, 수용능력:600명) 국내에서의 인솔자 : 권은현양
우리가 배정받은 숙소는 424호. 이용선수 18명, 2쌍의 부부는 특실로!<총 22명>
처음에는 집단 수용소 같다는 느낌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라..마음을 바꾸니 곧 좋은 느낌으로 돌아 왔다.
새로운 경험이며 동시에 20명이 친구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
한마디로 모든 것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배의 식사도 그렇고<식판들고 다니는 군대식>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육중한 배의 갑판에 서서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밤바다의 물살을 바라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6.2 土. 맑다.
새벽에 보니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둥실!
동튼 무렵에는 바다에 짙은 안개가 깔렸다. 배는 그 어둠을 뚫고 16시간의 긴 항해 끝에 한국시각 09:45(중국시각 08:45) 단동항에 입항했다.
<앞으로 시각은 중국기준시 적용>
하선 절차가 완료선 시각 09:30
단동현지 가이드 장봉선 양(화교, 평양출신)
내일 본경기가 있는 관계로 오늘은 압록강 주변의 관광이 이루어졌다.
먼저 찾은 곳은 압록강가에 위치한 虎山長城(호산장성) 그들의 표석에는 만리장성의 한 끝이라 했지만 강변에 위치한 한 개의 전략적인 산성. 정확히는 고구려 한 지역의 산성으로 주변 평야지대를 감제하는 훌륭한 위치였다.
오늘날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곳까지 마수를 뻗쳐 독소를 내뿜고 있었지만 내공(內功)이 깊은 나는 능히 그 독을 제압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는 단동시내에 있는 한식당 ‘동해관’에서 했다. 평양 출신의 여종업원들이 손님 시중을 들었는데 나중에는 그들이 춤과 노래까지 제공하였다.
점심식사 이후에는 압록강 유람선 관광이 이루어졌다.
중국측은 6.25때 폭격에 끊어진 압록강 철교를 남아있는 것만 개․보수 후에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1인당 입장료로 ₩3,000원을 요구. 우리들은 에스앤비 이인효 사장님 배려로 부담없이 관광에 나설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었다.
푸르고 넓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측 단동시와 북한측 신의주는 너무도 대조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치 않게 하였다.
북한 측은 그나마의 전시용 주택마저 생기를 잃고 ‘정체’해 있는데 반해서 중국측 단동(丹東)은 살아 生長(생장)하는 생물이라는 느낌이 듦에야...
역사의 땅, 푸르른 청둥오리의 목깃을 닮아 이름하여 ‘압록강’
압록강! 이것은 국경이나, 국경이 아니다.
엄연한 우리의 압록강이라! 되찾아야 할 영토인 것이다.

6.3. 日. 맑다
현재시각 08:00 ‘압록강 공원’에서 대회가 시작됐다. 그 이전에 선수들의 몸풀기 행사가 공원에서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앞에서 지도하는 사람은 생활체육이나 태극권 지도 강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체구는 마르고 왜소했지만 그의 동당 하나하나는 경쾨를 넘어 유쾌의 경지였다. 거리에는 타악기만으로 구성된 할머니 연주단의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조선족과 관련 있는 듯.
출발 시각이 정확히 지켜진 것도 아니고 走者(주자)들의 정확한 기록측정을 위한 전자 장치가 동원된 것도 아니었지만,
쾌청한 날씨, 적당히 불어주는 바람. 그 위에 행사자체가 하나의 축제처럼 이루어지니 역사의 현장, 그것도 현재의 국경선을 지척에 두고 이루어지는 효과까지 겹쳐 분위기 만점이었다.
참가인 구성은 국내에서 함께 떠난 213명과 일반 중국인. 많은 수의 단동시내 체육학교 학생들.
출발선상에서 북적대는 분위기 속에 가슴이 흥분으로 설레이는 것은 늘상 있는 일.
출발선을 떠나 올라갈 때는 위화도를 오른쪽으로 두고, 반환점을 돌아 내려올때는 왼쪽으로 그 역사의 현장을 끼고서 마라톤 경기는 이루어졌다.
출발하면서부터 앞에 선 사람을 하나, 둘 제끼는 맛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하리라..
반면에 새파랗게 나이 어린 학생이나 특히 여성 주자들에게 경기도중 추월당할 때는 그 편치 않은 심사의 갈등을 겪는다.
10km 코스의 반환점을 지나 계속 오르는 길, 압록강 푸른 물은 말없이 흐르는데..
역사를 거꾸로 반추하듯 거꾸로 뛰어 올라가며 느끼는 감정은 묘한 흥분과 새로운 흥분의 그 무엇이 있었다.
경기 운영이 미숙하여서인지 물수건이나 마시는 물거치대가 너무 적다는 느낌이 든 것은 나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어쨌거나 반환점은 돌았고,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출발점으로 귀환하는 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나의 철칙.
경우에 따라 속도도 내보고 무료하다 싶으면 잠시! 눈을 감고 뛰기도 하였다. 그렇게 반환점 돌아서 2/5쯤 왔을 때 반대 방향에서 뛰어오는 어떤 선수가 하는 말 “당신이 5등이야 ”
소리에 고무되어 속도를 높인 결과 한국인을 3명 정도 제꼈지만 시상범위인 3등 안에 내이름은 없었다. 결승선 1KM 남짓 거리의 음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바람에 마음 속으로 같이 보조를 맞춰주던 비슷한 연배의 중국인과 거리가 20M정도 벌어지는 사태가 발생. 결승선 100M 정도를 남겨놓은 상황에서 마지막 질주를 감행하여 장렬히(?) 대회를 마쳤다.
그때 그 중국인을 제쳤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렇게 한․․ 중 축제는 끝났다.
도착순위 총 3/位. 한국인 순위 不明.(나중에 국내에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7位)
점심식사는 호텔에서의 샤워후 213名 국내 출전 선수가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하였다.
같은 방을 쓰는 삼익전자의 김영덕씨가 공무관계로 늦게 방에도착. 그에 맞춘다고 늑장을 부리다가 버스에 늦게가니 ‘당첨’ 박수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시간을 지키지 않은 벌칙으로 ‘노래한마디’ 하라는 신호였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을 마다할 내가 아니기에 ‘홍도야 우지마라’를 열창(!?) 기본적으로 기분이 상기된 상태인지라 혈압이 높아져 목소리가 고르지 못하다보니 고함만 지른 효과에 그쳤으리라 여겨진다.
점심식사 후 우리 일행<22名>은 백두산으로 여행일정에 돌입!
압록강을 우측에 끼고 차는 북북동으로 진행.
가는 중간에 있는 고구려 유적 탐방이 중간 휴식지점이었다. 집안시 한 편에 위치한 ‘국내성’의 일부를 눈으로 확인하고 그 역사의 현장에 서 보았다.
그리고 나서 찾은 곳이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적석총. 가까운 거리에 원석을 벽돌식으로 잘라 쌓은 피라미드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장수왕릉!
이미 해가 떨어진 시각이기도 했지만 두 유적모두 담으로 둘러막아 열쇠가 있어야 출입이 가능한 시설안에 위치하고 있어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 접근하여 사진 찍음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대륙을 거침없이 달리며 그 넓은 천하를 효령했을 두분의 거룩한 지도자!
그분들을 따라 천하를 휘저었을 천하무적의 고구여 기마대!
그 자리에 서서 나는 두분 대왕의 우렁한 호령소리와 고구려 기마대의 거칠 것 없이 내닫는 질주의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국경을 넘어서까지 마라톤 원정에 참가했던 것이다.
저녁식사는 통화시 ‘ 묘향산’이라는 조선족 경영의 식당에서 이루어졌고 이곳에서는 강계출신 종업원들이 봉사하고 있었다.
여행을 다닌 이래 이곳에서 처음으로 호출돼 나가 여러사람 앞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기회를 가졌다. 숙소는 만통호텔

6.4 月. 흐림
백두산 관광이 있는 날이다. 밤을 자고 난 통화시 만통 호텔에서 본 아침 날씨는 잔뜩 흐린 것이 밤사이 빗방울도 뿌린 모양이었다. 천지관광에 대한 먹구름은 이 때 이미 예고된 것이다.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친 우리는 통화시를 출발, 백산시를 통해서 서파로 백두산에 접근하였다. 흐린 하늘은 찌푸린 얼굴을 좀처럼 풀 줄 모른체 표정이 없는데, 어느 때부턴인가 나타나기 시작한 도로 양편의 흰 자작나무숲은 쭉쭉! 잘빠진 미녀의 다리를 보고 있는 듯 시원스런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냐말로 자작나무의 바다였다.
백두산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중간지점에서 미니버스(100번)로 갈아타는데 이때 부터는 산길로 경사가 한층 급해졌다. 접근하면 할수록 날씨는 험악해지더니 어느 지점에서는 6월인데도 한편으로 치워져 쌓여 녹다 말은 상태의 눈도 보였다.
버스가 종착점에 도달했을 때는 비까지 내리는데 그곳에서부터는 꼭대기까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상황.
바람이 상상을 뒤엎을 정도로 심하게 불어 우의자락을 휘몰아치고 함께 내리는 빗발은 안경에 맞아 시야 확보가 만만치 않으니 어찌 보면 정신이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때문에 안경은 콧등에 걸치고 간신히 시야를 확보한 수준에서 한 걸음 또 한걸음 마치 순교자처럼 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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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9년 5월31일 제4회 압록강마라톤대회에 참가를 계획하시는 분들께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