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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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고비사막 마라톤 참가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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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지성 댓글 1건 조회 11,401회 작성일 05-10-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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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4. 27. Stage -4

- 거리: 37km
- 고도:
-Start : 325m
-End : 205m

"Jesse, 오늘은 산을 넘는다는데, 맞니?”
Team CB의 리더인 네이튼이 길을 가다 물어본다.
“오늘은 Mountain day라 뭐 맞겠지.”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Mountain day.
고비사막 레이스에서는 꼭 거쳐가는 관문 중에 하나다. 지난번 대회에서는 ‘마운틴 데이’에 거의 4,000m를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대회의 ‘마운틴 데이’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김경수님 말대로 죽을 고비를 20번도 넘게 넘겼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니면 코스 설계자인 ‘이안’을 미친놈이라고 표현해야 할지…

어제 밤부터는 식지 않은 지열 때문에 추위를 못 느끼며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아니, 자다가 더워서 몇 번이나 일어나 물을 마신 기억이 있다. 깊은 숙면을 못 취하다 보니 아침에 컨디션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았다.

중국은 동서 길이가 5,000km를 넘는 거대한 대륙이지만 통치 차원에서 북경시간을 기준으로 시차 없이 모두 동일한 시간을 적용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있는 서쪽 고비사막은 아침 8시가 넘어야 해가 뜨고, 밤 9시가 넘어야 해가 진다.

출발 후 언덕을 넘어가는데 좌측으로 태양이 뜨고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 삼아 여러 참가자들이 언덕 위에서 사진 찍기에 정신이 없다.

언덕아래 첫 번째 마을을 지나 수백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절벽을 오르니 멀리 ‘투루판’이 보이는 탁 트인 전망의 산 입구가 시작된다.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 보니 우리가 앞으로 넘어 가야 할 산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 보이는데, 나무 하나 없는 회색의 높다란 흙 산들이 괴물처럼 끔찍해 보였다.

넘고 넘고 또 넘고, 오르고 오르고 또 오르고…

한국의 산들도 나무가 없어지면 이곳 고비사막의 흙 산과 똑 같아 지려나 정말로 이상 야릇한 회색의 괴물 모양이다. 이놈의 산들이, 괴물들이 우리를 통채로 잡아먹으려는지 자꾸만 자꾸만 산의 중심부로 끌어 올리고 있다.

첫 번째 산을 넘으니 멀리 정상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다.
까마득한 산 정상에 뭔가 조형물이 보이는 게 마치 체크포인트 같은 게 있었다.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이 능선 저 능선을 타며 정상을 향해 돌격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나 ‘헉헉’ 대며 정상을 올라 체크포인트를 찾으니, 세상에 그곳에는 유정(油井)이 있었다. 어제 코스 후반부에 멀리서 불길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유정(油井)이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높은 산 위에 까지 유정(油井)이 있는 모습에는 기가 막혔다.

허탈한 마음에 또다시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인디애나 존스의 영화 촬영지 같은 계곡을 계속해서 내려간다. 어떻게 이런 동네가 다 있는지, 기이하다 못해 정말로 고비사막은 신기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같이 가던 Team CB(홍콩) 팀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기온은 올라가고, 물은 없어지고, 체크포인트는 안 보이고, 이제는 무조건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후미에서 그냥 따라가기만 했는데 이제는 앞장서서 갈 길을 재촉했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에서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 갈 길을 점검했는데, 체크포인트가 있는 산 정상부터 공포의 칼 능선이 마치 만리장성 같은 모습으로 구비구비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오로지 산의 색깔만 회색이고 주위는 하얀색으로 빛나는데 마치 바다 위의 섬같이 느껴졌다.

2005 고비사막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칼 능선 코스는, 주로 폭이 좁은 곳은 약 30~40cm 이며, 양쪽으로는 수십~백미터 이상의 비탈과 절벽으로 이뤄진 공포 그 자체의 공간이었다. 조심 조심 길을 가다가도 가끔 신발에 채인 돌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한참을 가도 계속해서 돌 굴러가는 소리에 소름이 끼친다. 도대체 이용술님과 김경수님은 이곳을 어떻게 지나갔는지 궁금하고 무지하게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그냥 나락으로 떨어지는 죽음의 코스.
어떻게 이런 곳을 대회 코스로 만들었는지 코스 디렉터인 ‘이안’이 괴이하게 보인다. 왠지 ‘ 이안’ 은 어릴적부터 공포영화를 과도하게 탐닉을 했을 것 같다.

칼 능선을 빠져 나와 평원 지대로 들어오니 열기가 장난이 아니다. 온도계를 보니 이미 50도를 넘었다. 일단 사막에서 태양이 뜨기 시작하면 고열의 한증막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평원 지대에서는 중국의 ‘홍팡’을 만났는데 이 언니는 얼마 못 가고 일사병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일사병으로 쓰러진 ‘홍팡’을 보니 나도 더위를 먹은 기분이다. 그래서 두 번째 임시 체크포인트에서 약 1시간을 쉬었고, 세 번째 체크포인트에서는 아예 누워서 낮잠을 잤다.

오늘은 더위와 험난한 코스 때문에 뛰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아니, 생각 자체를 안 한 것 같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운 게 새로운 힘이 난다.
충전이 끝난 나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개구리 뛰듯 마지막 남은 거리를 팔짝 팔짝 뛰어 갔다.

오늘의 기록은 12시간 44분으로 마감했다.


2005. 4. 28. ~ 29. Stage -5 (long Day)

- 거리: 90km
- 고도:
-Start : 205m
-End : 180m

드디어 누구도 빠져 나갈 수 없는 Long Day의 아침이 밝았다.

무척이나 힘든 1박 2일이 기다리고 있건만, Long Day를 마치면 완주를 한 거나 다름이 없다는 분위기에 Long Day의 부담감이 사라진 아침이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느긋하게 있다가 8시 출발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오늘과 내일에 걸쳐 달려야 할 거리는 90km.

사막에서 90km라 함은 무지막지하게 긴 거리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그것도 영상 50도가 넘는 상황에서 불규칙한 코스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들고 뛰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늘은 갈 길이 멀기에 큰 맘먹고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발 자체가 워낙 늦은지라 열심히 달려도 중간이상은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초반의 ‘인디애나 존스’ 촬영장 같은 계곡을 지나니 뻥 뚫린 평원이 나타났다. 또 다시 미친 듯이 달렸다.

첫 번째 체크포인트(이하 CP)를 지나서 부터는 비포장과 포장이 뒤섞인 도로를 일직선상으로 달리는 코스다. 날은 더워지면서 열기가 화끈거리며 끝이 보이지 않는 직선로를 가자니 벌써부터 지치는 것 같다.

이무웅님과 함께 가다가 힘들어서 뒤로 처지고 타오르는 태양에 몸을 보호하고자 틈틈히 물로 머리를 식히면서 가자니 두번째 CP가 나타났다. 나무가 우거져있는 사막의 오아시스는 더위에 지친 우리들에게는 천국과 같았다. 그곳에서 먼저 와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용술님과 김경수님을 만났는데, 앞으로 중간에 잠을 안자고 넌스톱으로 마지막 캠프까지 간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나는 어떻해야할지 고민이 생겼다.

두번째 CP를 지나서 길을 가는데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었다.
순식간에 기온이 40를 넘더니 50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날이 덥고 힘이 들다 보니 이제는 중간에 참가자들끼리 만나도 인사만 나눌 뿐 별다른 수다를 못 떤다.

허우적거리며 세번째 CP에 도착하니 ‘사막의 성수’인 ‘콜라’를 준다.
이상하리만큼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사막에서는 콜라에 목을 메고 있는걸 볼 수 있는데 콜라 중독은 국적을 안 가리는 것 같다. 성스러운 콜라를 한방에 들이키고 하늘을 보니 왜 그리 세상이 평화로워 보이는지….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콜라의 충만함 덕분에 다시금 정신을 차려 길을 가는데, 이거이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52도까지는 여유부리며 사진도 찍고 갈수 있었는데, 54도를 넘어서 부터는 정신을 못 차리겠다. 쏟아지는 태양광이 너무나 뜨겁고 달아오르는 열기 속에 어디 숨어야 할 곳이 필요했다. 물도 떨어지고 눈앞이 가물가물하는 와중에 갑자기 전봇대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다 싶어서 그 좁다란 그늘에 머리를 처박고 마지막 남은 물을 전부 머리에 부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왠지 살았다는 느낌이 들며 다시 눈이 맑아졌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길을 가니 얼마 안가 네번째 CP가 나타났다.
일단 목부터 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은 참가자들이 여기저기 그늘 속에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는 모습들을 보고 킥킥 웃었다. 나도 인근에 있는 건물 담벼락 그늘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전의 전봇대와 비교할 수 없는 커다란 크기의 그늘에 대 만족을 했다.

주최측에서는 날씨가 너무 더운 관계로 가장 더운 시간대인 1~5시 사이의 체크포인트에서는
무조건 1시간을 쉬게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곳에서 무려 3시간을 쉬다가 떠났다.

이번 대회에서는 전체 참가자 중 20% 정도가 탈락을 했는데, 그 중에 70% 정도가 Stage 5인 Long Day에서 탈락됐다. 같이 오던 일본 에이전트인 야수에도 이번 코스에서 일사병으로 후송됐으며, 나중에 알았지만 홍콩팀인 Team CB의 엔젤과 셀리나도 같은 코스에서 쓰러졌다고 한다.

사막지역에 가까워질수록 폐허가 된 마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사막화의 진행이 점점 빨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중국 서부지역의 사막화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를 뛰어넘어 전세계적인 환경 문제라 세계각국에서 수많은 원조와 투자가 들어 오고 있다. 과연 그 돈들이 제대로 쓰여지고 있는지 이곳 고비사막 현지와 중국당국이 하는 짓을 봐서는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도 달아오른 대지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마냥 있을 수는 없기에 길을 떠났다. 그런데 길 양쪽으로 허연 소금들의 밭이 펼쳐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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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말이 필요없군요. 감탄입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