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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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회 보스턴, 그 고통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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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평용 댓글 1건 조회 12,589회 작성일 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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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새벽 3시 30분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단체복의 왼편 팔에 선명하게
새겨진 태극기 때문에 마치 한국 대표선수로 출전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110회 보스턴
마라톤을 참가를 위한 대장정의 시작이다. 4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공항에서 일행을
만나 일본 나리타를 경유 디트로이트, 뉴욕에 이르는 길고 긴 여정에 오른다. 출발 당일 3시
간도 못되는 수면, 닭장에 갇힌 닭들처럼 비행기 안에서의 오로지 도착 시간만을 기다리는
한없는 고통도 보스턴 마라톤 참가에 대한 들뜬 생각으로 가볍게 만들 수 있다. 전주를 출
발한지 무려 28시간만에 뉴욕의 숙소인 Fort-lee sherathon hotel에 도착했다.

뉴욕에 도착하자 봄비가 우리를 맞이한다. 맛있는 한식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푹신한 호
텔 침대의 잠자리에 들지만 13시간의 시차가 내내 괴롭힌다. 한참을 잔 것 같은데 깨고 보
면 채 두 시간도 되지 않는다. 아무리 잠을 이루려고 노력해도 이 몸은 왜 그리 우리나라의
시간만 고집하는지 야속할 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로비에 나와 거닐어 보기도 하다가 5시
30분쯤 나와 주변을 달려 본다. 주변 거리도 잘 모르지만 한참을 달리다보니 주택가의 잘
꾸며진 정원이 있는 곳에 이른다. 활짝핀 수선화, 개나리, 그리고 잘 가꿔놓은 정원을 보니
그야말로`저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이다.

2일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뉴욕 시내 관광 후 유람선을 타고 맨하탄 전체 모습과 자유
여신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참! 촌구석에서 토끼와 발맞추며 살던 놈이 이런데도 와
보게 되다니. 마라톤을 하니 좋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든다. 전세계를 경악으
로 몰아넣었던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잔해(그라운드 제로)를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고 보스턴
으로 4시간 정도를 달려 이동하였다.

3일째, Friendsihp run에 참가하여 각국 주자들과 4.5km정도 보스턴 시내를 천천히 달린다.
처음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서로를 격려하는 친구가 된다. 함께 어울려 사진도 찍고
주최측에서 준비한 아침을 먹는다. 여기도 역시 축제 분위기이다. 골인점으로 미리 가서 사
진도 한 장 찍어둔다. 우리와 달라서 입장권을 사서 골인점에 구경을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보니 내일 대회에서는 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단다. 액스포장으로 이동하여 배번호를 수령
하고 참가자 명단이 적혀있는 곳에 가서 3599번 자리에 `KOREA 안평용`이라고 흔적을 남기고
우리반 학생들 체육대회 기념T로 같은 색깔의 옷으로 학급의 인원 수만큼 구입하였다.

보스턴에 유명한 것이 바로 세계적인 대학이다. 버클리 음대, MIT공대, 하버드 대학에 들렀
다. 한번의 구경으로 그들의 생활을 알 수 없지만 세계적인 석학들을 배출했던 곳이라 감회
가 새롭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도 구경하고 대학 여러 건물을 둘러보면서 우리와 상관없는
곳이라는 생각도 잠시, 작년에 하버드에 입학했던 본교 출신 쌍둥이와 귀국후 알게 된 일이
지만 버클리 음대에 다니는 졸업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전혀 상관없는 것만은 아니라
는 생각을 해본다. 일행들에게 자랑이 절로 나온다. 대학의 설립자 동상의 왼발을 만지면 자
손 중에서 이 대학에 들어온다는 그들의 믿음 때문인지 황금빛으로 변할만큼 빤질빤질한 발
을 만지며 동상에서 나도 한 장의 사진을 찍으며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자식들이 이 학교
에 다녔으면하는 소망도 빌어본다.

대회 당일, 역시 아무리 잠을 이루려고 노력해도 왜 이렇게 한국 시간을 잊지 못하는지 야
속하고 야속할 뿐이다. 낮에는 거의 혼수 상태가 된 듯하다가도 밤만되면 잠을 이룰 수 없어
괴로울 뿐이다. 아침을 찰밥으로 먹은 후 보스턴시에서 서쪽으로 42km 떨어진 홉킨톤(Hopkinton)
으로 이동한다. 출발은 참가기준기록 순위로 1천 명씩 묶어 등록선수 뒤에서 출발한다.
한글로 쓰여진 `보스톤 한인 장로교회`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미리 준비한 `전주해성고`를
새긴 운동복을 입고 참가 배번 3599의 그룹에서 출발 대기한다.

1897년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라 할 수 있는 보스톤 차사건을 기념하여 매년 4월 셋째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제정“애국의 날(patriot day)”로 이름 붙여 그 축제의 하나로 마라톤 대
회가 시작 된 것이다. 1947년 서윤복 선수의 우승, 1950년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선수가
나란히 1, 2, 3등을 휩쓸었고, 2001년 이봉주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욱
친근한 대회이고, 금년이 110회 대회이니 그 역사만큼이나 대회 운영 모든 면에서 완벽함을
자랑한다. 그저 모든 면이 부러울 뿐이다.

출발신호와 함께 음악, 함성, 격려의 소리는 천지를 진동한다. 흥분과 열정에 휩싸여 열광적
인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홉킨톤을 출발하여 왕복 2차선의 한적한 시골길을 나선다. 도로
양쪽엔 남녀노소할 것 없이 나와서 응원하는 모습이 온통 축제 분위기다. 엘비스프레슬리
복장, 마당에 앰프를 설치하여 신나는 노래로 주자들을 응원하고 미니오케스트라, 밴드까지
구성하여 흥겨움을 더해주니 어깨춤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이런 모습은 골인점까지 어느
한구석 빠짐없이 이어져 있어 그 무엇으로 형언할 수 없는 영광과 한없는 부러움 그 자체다.

날씨는 처음은 약간 쌀쌀하게 느껴졌지만, 적당한 온도에 약간의 구름이 끼고 달리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장거리 여행의 피로, 시차로 인한 수면부족 등으로 몸 컨디션은 좋지 않았
지만 수십만의 관객의 응원이 마라톤의 진수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15km를 지나 웨슬리 여자대학에 이르니 그 함성 소리에 정신이 나갈 정도로 열렬한 응원을
해준다. 웨슬리 여대생들에게 하이파이브(Hi five)를 하면서 힘을 받으며 달려 나간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피로감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듯한 짜릿함을 느낀다.

주로 양편으로 어디에나 어린 꼬마들부터 남녀노소 불구하고 손마다 물, 오렌지, 포도,
사탕, 화장지 등을 들고서“good job", "eagy", "great" 등을 외치며 응원을 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다 받아 먹었다가는 배가 터질 정도다. 하이 파이브 한 번만 해도
좋아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Thank you"로 대신하며 달릴 뿐이다.

42.195km 전 구간이 같은 장면의 연속이요, 밴드, 기타 타악기, 오디오 등을 가지고 나와 주
자들을 격려하고 마치 자기 가족을 응원하는 듯한 모습에서 즐거움과 동시에 부러움마저 느
끼지 않을 수 없다. 도로 통제를 할 때마다 경찰들과 다투는 모습을 접하는 우리나라 상황
과 비교해보면 한없이 부러울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보스턴에 온 본전을 뽑은 것만 같다. 내
가 무엇으로 어디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단 말인가?

최근에 참가했던 국내 대회가 모두 날씨가 순조롭지 못했다. 작년 중앙일보마라톤은 비, 공
주대회는 추위, 금년 동아마라톤은 바람과 추위, 전주마라톤은 바람과 비로 인하여 기록을
내기가 어려웠다. 특히 동아마라톤에서 3:00:10의 아쉬운 기록 때문에 보스턴에서 즐겁게 달
리자는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날씨가 좋아 몸 상태가 극히 좋지 않았음에도 5km를 넘어서
자 은근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20km 이후에는 욕심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야 말
았다. 듣던 것보다는 힘든 코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풀코스 완주가 어디 욕심만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단 말인가. 국내 대회 같았으면 포기해 버릴 정도의 상태였지만 멀리까지
와서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상심(傷心)의 언덕 즉,`Heart Break Hill`이라고 불리게 된 뉴턴힐의 (32km지점) 마지막 구
간―`심장 파열 언덕`이라고 오역―도 생각만큼 긴 언덕은 아니었다. 다만 다리에서 빠진 힘
을 주위 사람들의 열렬한 응원으로 채우며 한걸음 한걸음 옮기는 수준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다. 가슴에 새긴 글자 `전주해성고`를 외쳐 주는 교민이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달린다. 힘들 때마다 속으로 아내와 두 아들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무거운 다리를
옮긴다.

속도는 한없이 떨어졌지만 기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이 축제의 주인공으로서 동화되어 가
는 느낌을 갖게 되니 빨리 달리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래 즐기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느낌을 갖게 되나 이런 생각을 하니 고통이 금방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
나도 온도는 더 이상 오르지 않아 달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이제 시내로
들어서자 더 많은 인파와 함성이 이어진다.

여기저기 자목련이 핀 건물사이를 지나면서 보스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로 오른쪽에
있는 멀리 푸르덴셜생명 높은 건물과 보스톤 Red sox의 fenway park가 보이고 좌회전을
하여 약 300m의 직선 주로에 들어섰는데 멀리 보이는 보스톤대회의 결승점이 파란색으로
단장한 모습으로 선명하게 들어온다.

길고 긴 여정에 극도의 피로감에 흐느적거리는 몸이지만 마치 올림픽 우승자가 골인점에 도
달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의 열렬한 환호성에 몸을 맡긴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났
다. 그야말로 힘든 코스를 완주했다는 기쁨과 다시는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교차한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어느 곳 하나 빠짐 없이 뒷바라지해 주신 에스앤비투어 이인효 사장님,
양찬우 이사님, 이경희 팀장님, 현지 가이드 김승현, 제임스 이 모든 분들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저에게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으며,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을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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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안평용님 안녕하세요, 여독은 풀리셨는지요. 용띠 화이팅입니다.

소중한 인연 잘 가꾸어 평생 같이 갈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랍니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최고의 선생님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