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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마라톤 관광지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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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세달사 댓글 0건 조회 14,980회 작성일 10-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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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마라톤대회 관광지안내

 















단동시(
丹東시)


압록강변.jpg


단동은 중국의 요녕성과 북한의 국경지대로 1960년대 이전까지 당대(唐代)에 설치되었던
안동관할보호관청에서 유래된 `안동(安東)`이란 이름으로 불렸으며, 1965년에 "紅色東方之城 (해가 뜨는 동방의
붉은 도시)"라는 뜻을 가진 丹東(붉을 단/ 동녘 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재는 중국 최대의 변경도시이면서 최북단의 연해도시로써 단동이 가진 특유의 자연조건과 오랜 역사가 지닌 문화유적들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방문하고있다. 특히, 건너편으로 북한을 볼 수 있는 압록강은 단동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 관광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여러가지로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평양과 북경을 달리는 국경열차가 이곳을 통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현대적 건물이 도시 곳곳에
세워지는 등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어 삼림면적 비율이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120km의 아름답고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단동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압록강 근처에 위치해 강 사이로 북한 신의주를 볼 수 있는 압록강 공원과 6.25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교각만 남아 있는 단교, 산 정상에 서면 단동시내는 물론 신의주까지 볼 수 있는 금강산공원 그리고
고구려 천리장성에 해당되는 박작성 등이 있다.

◈ 단동 정보(07.07)

- 면적: 1.49㎢

- 인구: 260만명

- 인구구성: 한족, 만족(32%), 몽골족, 회족, 조선족 등 28개 소수민족

- 학교: 대학교 4개, 전문대 10개


압 록 강


압록강 전경.jpg


압록강공원은 북한과의 국경을 흐르는 압록강의 강 언덕에 있는 공원으로 공원 앞에 펼쳐지는 압록강대교가 아름답기 그지없으며, 압록강을 따라 모터보트나 유람선을 탈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면 북한 영토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압록강 단교는 압록강으로 나뉘어진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다리며, 열차와 자동차가 함께 지날 수 있는 병용교 가운데 철로가 있고, 바깥쪽으로 자동차가 달릴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위 화 도


위화도.jpg


고려말기 1,388년(우왕14년) 고려군이 요동을 정벌하기 위해 압록강 하류, 신의주와 단동사이에 위치한 위화도에 머무르던 중, 이성계가중심이 되어 회군한 사건으로 유명한 섬, 현재 북한의 영토이므로 상륙할수 없으나 섬주변을 유람선을 타고 관광 할 수 있다.


단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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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11월부터 1951년 2월까지 미군기 B29의 폭격을 받아일부 교각만 덩그라니 남아있는아치형 철교이다. 단교는 1911년 만주진출의 야심을 품은 일본 조선총독부 철로국에 의해 세워졌다. 그후 일본은 1943년 철로와 도로를 겸한 길이 940M의 현재 압록강단료좌측의 중조우의교를 또다시 완공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단교 끝부분 4번째 교각은 개폐식으로되서 90도 회전가능하여 범선들이 통과할수 있었다.


호산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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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장성은 단동시 동쪽에서 약 15km 떨어진 압록강변에 있으며 강을 사이에두고 북한의 우적도와 의주군을 바라볼수있다.
호산장성은 1469년에 건설되어 400 여년의 사회변혁을 거치고 대자연의 비바람과 인위의 파괴로 인하여 면모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되었다.
1990년부터 1993년에 이르기까지 문물과 고고학자들의 조사와 검정을 거쳐 600여m 의 성벽과 봉화대, 군사영방등 유적들을 발굴하였다.
그이후에 2차례를거쳐 장성의 수복 공정을 진행하였다. 호산장성은 한면은 산으로, 삼면은 강으로 둘러싸여있고, 산 형세가 마치 누워있는 호랑이 모습과 같다하여 이러한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호산장성의 또하나의 특수한 코스는 일보화이다.


백 두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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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 동부 최고의
산맥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청나라때 백두산을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에 "장백산(長白山 : 창바이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원래는 화산활동을 하는 산이었으나 이미 250년 전에 활동을 멈춘 사화산(死火山)에 속한다. 백두산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으로서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국가급 보호구에 속한다.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의 영토로,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한다. 백두산 연평균기온은 -8도로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


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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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풍경중 최고로 뽑히는 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있으며, 백두산의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에서 "천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형을 띠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0㎢, 호수 주위 길이가 13㎞, 평균수심이 204m 정도이다. 천지는 옛부터 안개가 많고 1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천지의 물이 흘러 장백폭포와 온천을 형성한다. 또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천지를 닮은 작은 호수가 있어 `소천지`라고 불린다.


천지의 수심 중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가장 깊은 화구호(칼데라호)로 알려져 있다.이 곳의 연평균기온은-7.3℃, 평균수온은 0.7-11℃이며, 11월에 얼어붙었다가 6월이 되어서야 녹는데 얼음의 두께가 1.2m나 된다. 천지의 수질이 매우 깨끗하여 먹을 수도 있으며, 주로 지하수와 강수량으로 채워진다. 이곳에는 잉어를 비롯한 몇 종류의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중국과 북한의 국경 호수로서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하지만 이 곳의 기후가 불규칙하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자주 발생해서 여행객들이 맑은 날에 천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천지는 또 국경선이 통과해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놓여있는곳이라는 점에서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금강대협곡


금강대협곡.jpg


대협곡은 백두산이화산 폭발을일으킬 때 용암이 흐르던 자리가 오랜 세월 풍화에 씻겨 이루어진 것으로 협곡 주위로는 원시림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협곡 바닥에는 맑은 물이 흘러간다. 협곡의 크기는 폭이 평균 120미터이다



집안시(
集安市)



집안시%20사본720.jpg








집안(集安)시는 고구려의 옛 수도였던 국내성의 현재 지명으로
길림성 동남쪽에 위치한다. AD 3년경 고구려 제 2대왕인 유리왕이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였는데 427년까지 가장 오랜기간(424년) 수도로서 가장 찬란했던
번성기를 누렸던 만큼 1만여개의 고분과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있어 이곳이 국내성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거의 없다.

북온대 대륙성기후로 사계절이 뚜렷하고 연평군기온은 6.5℃이며, 강우량은 약 1000㎜
정도이다. 유구한 역사가 말해 주듯 압록강과 훈강 수로의 교통, 내륙과 연결되는 육로
및 북한과 이어지는 철도 등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

광개토대왕비, 태왕릉, 장군총 등 고구려의 많은 문화 유산이 산재하고 있어 융성했던
시대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비.jpg



414년(장수왕 2)에 고구려 제19대 왕인 광개토왕의 훈적(勳績)을 기리고 수묘인연호(守墓人烟戶)를
명기해두기 위해 세운 비.

비가 있는 곳의 현재 지명은 압록강 북안(北岸)인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輯安縣] 퉁거우 진[通溝鎭] 타이왕 향[太王鄕]
타이왕춘[太王村]이다. 주변에는 대형고분과 성터를 비롯한 많은 고구려 유적이 산재해 있다. 현재 비의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있는 태왕릉(太王陵)을 광개토왕의 능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부근에서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비는 커다란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으로 된 불규칙한 직4각형의 기둥 모양으로 된 4면비로,
남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세워져 있다. 높이는 6.39m로 윗면과 아랫면은 약간 넓고 중간부분이 약간 좁다.
아랫부분의 너비는 제1면이 1.48m, 제2면이 1.35m, 제3면이 2m, 제4면이 1.46m이다. 아래에 화강암의
받침대를 만들었는데 길이 3.35m, 너비 2.7m의 불규칙한 직4각형이고, 두께는 약 20cm이나 고르지 않다.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해 비면에 가로·세로의 선을 긋고 문자를 새겼다. 문자는 비의 4면에 모두 새겨져 총 44행
1,755자로, 이중 마멸되어 전혀 판독할 수 없는 것이 약 140여 자에 이른다. 중국 학자 왕젠췬〔王健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제1면은 11행 449자, 제2면은 10행 410자, 제3면은 14행 574자, 제4면은 9행 369자이다.
각 문자는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에 가까운 서체를 사용하여 장중하고도 위엄이 있어 고구려 독자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그리고 문자의 크기는 균등하지 않으나 대략 가로·세로가 14~15cm 안팎이며, 이체자(異體字)와
간체자(簡體字)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장수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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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릉(長壽王陵)은

지안 현(輯安縣) 퉁구(通溝)의 토구자산(土口子山) 중허리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돌무덤(石塚
석총
)으로서, 현재 가장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적석총이다. 흔히 장군총(將軍塚)으로 불린다. 산 아래에

광개토왕릉비가 있다.



무덤은 총 7층의 단계식

피라미드로 이루어져 있고, 평면은 장방형으로서 한 변의 길이는
31.5~33미터이며,
무덤의 높이는 현재 14미터로 아파트 5층 높이에 달한다. 기단(基壇)의 무덤 둘레로 한 변에 세 개씩

호석(護石)이라 하는 적석 밀림 방지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분실되었는지 오직 동변만 가운데 호석 없이 두 개뿐이다.



정부(頂部)는 만두형(饅頭形)을 하고 상단부에 1열의 구멍이 있어 정상에 건축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안쪽에는

향당이라 불리는

사당이 있었으리라 추정했지만, 무덤 동쪽에 초대형 제단이
발견됨으로써 현재는 불탑이나 비석이 서 있었을 것으로 보는 추세이다.



안팎 전부를 화강석으로 쌓아올린 석축릉으로 구조가 정연하고 규모가 매우 장대하다.



환인현
桓仁縣(환런만족자치현)


환인현.jpg



중국 북부 요령성(辽宁省)에 위치한 환인현(桓仁县)은 만주족 자치구로서 3547㎢의 면적에 총 30만의 인구 중 30%가 만주족이며 한인을 비롯
모두 14개 민족이 있다.
농업인구가 22만명이며 혼강(渾江) 이 중심부를 흐르고, 삼림, 수자원, 광산 등 각종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단동에서 차량으로 4시간 거리이며
기후가 좋아 지금껏 큰 수해도, 가뭄도 없었으며 청정자연으로 인삼을 비롯한 한약재와 산호도,산포도 등의 작물도 품질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환인의 지명도를 크게 높인것은 고구려의 첫 수도인 졸본성의 터로 추정되는 오녀산성인데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에
등재되었다.




오녀산성
(五女山城)


오녀산성-2.jpg




오늘날 오녀산성(五女山城)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흘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처음 언급되었다.고구려인이 만든 『광개토왕릉비』에는 홀본성(忽本城)이라고 하고
있고,

삼국 시대에는 환도성(丸都城), 졸본성(卒本城)으로
불렸으며, 《고려사》 공민왕조에는 오로산성(五老山城) 또는 우라산성(于羅山城)이라고 나타나 있다.





오녀산성은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남북 길이 1500m, 동서
너비 300m이고, 전체 약 8km이다.성 안에는 천지(天池)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는데, 2천
년 동안 한 번도 마른 일이 없다고 하며, 깨끗하여 음료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산성은 200m
절벽 위에 위치하고 있어, 천연의 요새가 되어 왔다. 동쪽과 남쪽의 경사가 완만한 곳에는
성벽을 설치하였다. 고구려 멸망 이전에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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