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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프랑크푸르트에서 247을 쏘다. 작성자 : 박성배
작성일 : 2016/11/17 13:2 조회수 : 827

[특별기고] ‘와신상담’ 프랑크푸르트에서 247을 쏘다


편집자 주 : 필자 박성배(55) 씨는 40대 중반까지 등산 마니아였다가 홧김에 마라톤 동호인과 벌인 하프마라톤(2005) 내기에 이기면서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2007년에 서브3를 달성했고 2010년엔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계기로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 서브3완주 도전을 시작했다. 같은 해 베를린마라톤과 뉴욕마라톤, 2011년 런던마라톤과 시카고마라톤에서 모두 서브3 기록을 달성해 도전에 성공했으며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초임을 인증 받았다(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례는 없음). 이후 기 완주한 도쿄마라톤이 메이저대회에 편입되면서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완주자가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 서브3 완주’를 목표로 세계 각지를 누비는 중이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시간 45분 48초다.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 서브3’라는 긴 여정 속에서 올해는 ‘설욕전’의 해라고 할 수 있다. 내게 패배의 쓴맛을 맛보게 한 3개의 대회에 모두 도전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 2013년부터 번번이 실패했던 파리마라톤과 로마마라톤을 연달아 ‘클리어’했고, 그 여세를 몰아 프랑크푸르트마라톤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이 대회를 준비하는 마음은 앞선 두 대회를 준비할 때보다 사뭇 무겁고 진지했다. 쉽사리 잊히지 않는 끔찍한 부상의 기억 때문이었다.



2년 전, 종아리 파열로 포기했던 회한의 레이스

혹시 필자의 완주기를 종종 챙겨본 러너분이라면 기억할 수도 있겠는데, 필자는 지난 2014년 총 4개 골드라벨 대회에 참가해 그야말로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상반기 3월에는 감기몸살의 여파로 로마마라톤에서 중도 기권했고, 일주일 뒤 열린 파리마라톤은 출전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그해 하반기 10월에 베스트 컨디션으로 암스테르담마라톤에 참가했지만 레이스 중 난데없는 종아리 파열 부상을 당했다. 천신만고 끝에 턱걸이 서브3(2:57:30)를 달성했지만 부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당연히 일주일 뒤 열린 프랑크푸르트마라톤에는 참가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호텔 로비를 걷는 것조차 불가능해서 엑스포장 근처도 못가보고 쓸쓿히 조기 귀국을 했다.

2년 전 히스토리가 그렇다 보니 프랑크푸르트로 떠나는 마음은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하는 내내 컨디션 조절과 무사 완주만 생각하며 애써 마음을 추슬렀다. 10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대회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호텔 엑셀시어’에 짐을 풀었다.

다음날 대회장 겸 엑스포장인 ‘프랑크푸르트 메세’를 방문했다. 유명한 국제전시장인 줄은 알았지만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했다. 주최 측은 몇 개 전시실만 빌린 게 아니라 대형 건물의 3개 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1층은 샤워실과 탈의실 및 주자들 이동 공간, 2층은 물품보관소, 3층은 엑스포장 및 배번 수령지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피니쉬라인이 엑스포장 옆 페스트할레 콘서트홀 안에 마련돼 있었다. 대회장의 모든 시설을 실내에 구성할 생각을 누가 했을까. 주자들로선 기온이나 비․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느긋하게 레이스 준비를 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한국보다 추운 기온이 걱정이었지만 대회장 시설을 보니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준비는 완벽했다… 근데 시계가 왜 먹통이니 ㅜㅜ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조식부페에서 일본식 된장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전날 탄수화물 로딩을 한답시고 점심과 저녁 모두 빵을 먹은 게 조금 신경 쓰였는데 아침식사라도 밥을 먹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이 들어가야 안심이 된다.

대회장에 가보니 물품보관소 쪽이 한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회장 근방에 워낙 호텔이 많다. 거기서 묵은 참가자들이 애초 경기복 차림으로 나오니 맡길 짐이 적은 것이다. 그만큼 타 지역 또는 해외 참가자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구경하며 몸을 움직이다가 대열을 따라 출발 20분 전에 대회장 밖으로 나갔다. ‘메세 프랑크푸르트’ 앞 대로에 출발 아치가 설치돼 있고 수많은 인파가 그룹별로 모여 있었다. 수만명의 웅성거림 속에서 주위를 환기시키는 출발음이 들렸고, 주자들은 거대한 너울처럼 출발 아치 건너편으로 쏟아져나갔다.

서서히 몸을 풀면서 주자들 틈에 끼여 달렸다. 2년 전 구경도 못해보고 포기한 대회에서 드디어 출발을 했다니… 깨알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날씨가 4~9도 정도로 쌀쌀한 편이었지만 추울 정도는 아니었고, 워낙 화창해서 기분까지 상쾌했다. 다만 초반 코스가 쉴 새 없이 이리 꺾고 저리 돌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

복잡한 주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될 즈음 5km 지점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페이스를 확인하려고 시계를 보니 ‘아뿔싸’ 출발 후 20초까지 카운트된 상태로 화면이 멈춰있었다. 아무래도 배터리가 거의 소진된 듯했다. 마라톤 입문 이래 풀코스 대회에서 시계 없이 레이스를 한 적이 있었던가? 시계도 안 보고 페이스를 제대로 맞출 수 있을까? 그러나 걱정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쌓아 온 주력을 믿고 감으로 달려보기로 했다. 5km 지점을 지나는데 다행해 작은 게시시계가 있었다. 출발신호로부터 작동하는 건타임 시계이므로 정확한 첫 구간기록을 알 수는 없지만 이후 5km마다의 구간기록은 확인할 수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단풍으로 물든 환상 코스에서 밴드들의 공연 릴레이까지

초반 도심 코스를 달리면서 ‘세상에 이런 마라톤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심의 명소를 경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샅샅이 누비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응원하던 사람들이 지름길로 포인트를 옮기면 달리는 주자를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렇게 응원하는 무리를 여럿 목격했다)

9~10km 지점을 지나자 도심을 벗어나 시원하게 뻗은 도로와 탁 트인 경관이 눈앞에 나타났다. 무엇보다 단풍이 정말 멋있었다. 우리나라와 달리 노란 단풍 일색인데 이국적이면서도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치만으로도 눈이 즐거운데 그 아름다운 코스 곳곳에서 펼쳐지는 밴드들의 거리공연은 주자들을 도무지 지칠 수 없게 만들었다. 처음엔 코스 초반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중후반부에 더 자주 나타났다. 마치 거리공연 패스티벌에 온 듯 공연의 종류도 다채로왔다.

레이스는 순조로웠다. 상위권 그룹인데도 코스에 여백이 없을 만큼 많은 주자들이 달리고 있어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달리기 알맞았다. 다른 골드라벨 레이스와 비교해도 상위권 주자 층이 매우 두터운 대회인 듯했다. 내 페이스와 리듬에 맞는 주자들과 서로 끌어주며 달리다가 페이스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금방 다른 무리를 찾아 그룹 레이스를 펼칠 수 있었다.

트라이애슬론 복장으로 뛰는 주자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색적이었다. 세계 트라이애슬론 5강(영국, 독일, 미국, 뉴질랜드, 스위스)으로 꼽히는 나라답게 최상위 그룹에서도 트라이애슬릿으로 보이는 주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들을 응원하는 트라애애슬론 클럽들은 열띤 응원전으로 많은 주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30km 부근까지 대략 3분55초 페이스로 경쾌하게 달렸지만 후반으로 접어들자 역시 고비가 찾아왔다. 무상이나 컨디션 난조는 아니고 체력 저하로 페이스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전날 식사를 너무 가볍게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가볍게 잘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에너지 비축이 덜 된 모양이었다. 하지만 후회한들 어쩔 것인가. 킬로미터당 4분 정도로 버티면서 나머지 레이스를 이어나갔다.



기대하지 않았기에 더 짜릿했던 해외마라톤 첫 ‘2:47’

힘겹게 37km를 넘어섰다. 레이스 초반에는 현지 클럽 회원들과 참가자 가족들이 많이 나와서 응원전을 펼치더니 중후반에는 보이지 않는다. 응원인파가 있으면 힘이 더 날 텐데 아쉬웠다. 레이스 종반에는 스폰서 기업들의 광고용 아치가 많아서 자칫 골인지 근방인가 하고 헷갈릴 뻔했다.

어디쯤일까… 출발할 때 봤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자 남은 힘을 쥐어짜며 결승선을 찾아 두리번거렸는데 골인지는 출발지와 위치가 달랐다. 약 200m를 더 달려서 대형 콘서트홀(페스트할레)로 들어가게 돼 있었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뛰어 들어가자 난생 처음 보는 실내 피니시 라인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치를 통과하며 게시시계로 본 시간이 2시간 48분 28초 내외. 그렇다면 넷타임은 더 당겨졌을 것이었다. 골인 후 공식 기록을 확인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기록이 찍혀있었다. 무려 2시간 47분 56초. 해외대회에서 작성한 베스트 기록이자 국내에서도 쉽지 않았던 ‘이사칠(2시간 47분대)’이었다.

골인지 주변을 대충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마라톤은 뿌린대로 거두는 운동이면서 한편으론 참 당양한 요소에 의해 성패가 갈리는 운동이라는 생각. 그리고 독일의 아담한 도시 프랑크푸르트가 참 대단한 대회를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도심을 샅샅이 누비는 보기 드문 코스, 42km 전체에 포진한 밴드 공연, 무엇보다도 경기 이외의 모든 퍼포먼스가 실내에서 이루어지도록 한 운영 시스템까지 프랑크푸르트마라톤은 모든 게 파격이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러너라면 ‘프랑크푸르트의 전시장은 무슨 행사든지 다 가능한 곳이구나’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던 광고와 홍보보다 강렬한 경험이다. 우리나라는, 우리의 메이저대회는 이런 파격을 시도하는 날이 언제쯤 올까……. 씁쓸하기도 하고 조금 분한 마음도 생겼다.



[마라토너 박성배의 해외마라톤 완주 기록]

2008년 도쿄마라톤 2시간 56분 17초 골드라벨
2009년 이브스키마라톤 3시간 18분 10초(건타임)
2010년 보스턴마라톤 2시간 58분 43초 골드라벨
2010년 베를린마라톤 2시간 51분 26초 골드라벨
2011년 런던마라톤 2시간 53분 20초 골드라벨
2011년 뉴욕마라톤 2시간 48분 58초 골드라벨
2011년 시카고마라톤 2시간 49분 21초 골드라벨
2012년 도쿄마라톤 2시간 53분 14초 골드라벨
2012년 보스턴마라톤 3시간 06분 26초 골드라벨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 2시간 55분 22초 골드라벨 취소
2012년 호놀룰루마라톤 2시간 55분 13초 골드라벨 취소
2013년 샤먼마라톤 2시간 56분 52초 골드라벨
2013년 프라하마라톤 3시간 06분 23초 골드라벨
2013년 베이징마라톤 2시간 51분 14초 골드라벨
2013년 아테네마라톤 2시간 59분 06초
2014년 암스테르담마라톤 2시간 57분 30초 골드라벨
2014년 싱가포르마라톤 3시간 04분 47초 골드라벨
2016년 파리마라톤 2시간 51분 11초 골드라벨
2016년 로마마라톤 2시간 49분 08초 골드라벨
2016년 프랑크푸르트마라톤 2시간 47분 56초 골드라벨



본 후기는 필자 박성배님의 원고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원글 출처: http://www.runningguide.co.kr/news/news.asp?board_idx=13&idx=431&board_mod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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