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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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상해 마라톤 대회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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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지성 댓글 1건 조회 13,077회 작성일 06-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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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아들 블로그: 방문하기

11월 26일 (일) 너무나 즐거웠던 일요일

나 같이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이 상해를 3번째 방문하는데 그 동안 상해에서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질리도록 많은 사진을 찍고 싶었다. 하지만 3년 만의 3번째 방문 기념으로 밤 늦도록 이어진 음주와 가무 때문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모닝콜 소리에 본능적으로 일어나 샤워를 하니 일시적으로 정신이 드는 것 같다. 지난번 북경 대회를 달리다가 배가 고파서 고생을 한 경험을 반복하지 않도록 아침을 든든하게 챙겨먹기로 했다. 호텔 주인이 한국사람이라 조식도 한,중식 부페로 나오는데 우리 입맛에 딱 맞는 맛을 제공한다. 다행스럽게 밥이 잘 들어가며 속이 풀어지는 것 같다. 저녁때까지 배가 안고플 정도로 계속 계속 먹었다.

대회장은 남경로의 시작 지점이다. 버스에서 내려 몸을 풀고 태극기를 앞세워 대회장에 입성을 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예상을 초월한다. 대다수 중국 현지 참가자들에 비해 세련된 옷차림과 신발들로 무장한 우리들의 모습이 실력이야 어떻든 그들 눈에는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로 보인 것 같다. 출발지점 분위기는 예전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 영향으로 고풍스런 유럽풍 건물들이 좌우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분위기만 보면 낭만적인 유럽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곳 상해도 근대사의 아픈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지만 현재는 과거의 상처가 돈을 끌어들이는 관광지로 탈 바꿈 되어있다. 돈 버는데 있어 탁월한 감각이 있는 중국인들의 상술이 부럽다.

확실히 상해는 북경보다 모든 면에서 세련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달림이들은 절대적 숫자에서 유치 찬란한 패션이 대세다. 그들에 비해 첨단 용품으로 도배질한 나의 모습이 그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건 당연지사 대뜸 코가 올라가 하늘을 찌른다. 참고적으로 나의 용품을 살펴보면, 강한 군 청색의 인진지 쿨맥스 모자, 청색이 교배된 듯한 진한 회색 빛의 노스페이스 쿨맥스 티셔츠, 요란함의 극치인 CW-X 타이즈, 마라톤 전용 인진지 양말, 장거리 전용 미즈노 신발. 적어도 액면가에서는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특히 현란한 웨이브가 특징인 CW-X 타이즈를 본 중국사람들의 관심이 장난 아니다. 만져보고 사진 찍고 기능에 대해서 물어보고 등등… ’그런데 남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는 놈은 뭐야?’

대회 출발이 8시로 알고 있는데 만만디 정신의 영향인지 8시가 한참을 넘어도 출발할 생각이 없다. 오늘도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일찌감치 앞쪽에 자리를 잡았지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이리저리 밀리다 압사를 당하는 줄 알았다. 주변에 여자라도 있었으면 행복(?)할 수도 이었지만 끔찍하다 여기는 전부 남자투성이다. 누가 중국 아니랄까봐 역시 북경이나 상해나 시끄럽고 무질서한 난장판은 똑같다. 기다림에 지쳐 지쳐서 잠이 들 무렵 갑자기 출발을 한다. 사람들에 떠밀려 출발 게이트를 지나다 보니 카메라 초점 맞출 시간이 없다. 지체라도 할 참이면 밀려오는 인파에 밟혀서 도로와 나의 구분이 없어질 것 같았다. 중국 사람들은 예전부터 인해전술에 익숙해서인지 몰려드는 스타일이 우리와 다르다. 앞뒤 안 가리고 몰아붙이는 행동이 어떨 때는 무섭기도 하다.

상해의 대표적 번화가인 남경로를 달리는 맛이란 지난달 북경의 천안문 광장을 달릴 때와는 또 다른 묘한 흥분을 자아낸다. 서울의 명동 한복판을 2만이 넘는 인파가 한꺼번에 뛰어다닌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길이 좁다 보니 잘못하면 유리창 깨지고 넘어지고 난장판 날것이다. 하지만 이곳 상해의 명동인 남경로는 모든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은 대로다. 이런게 대륙적 기질인지 중국이란 나라 땅덩어리가 큰 만큼 길도 넓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을까? ‘좋은 길은 좁을수록 나쁜 길을 넓을수록’을…

초반의 유럽풍 건물 숲을 지나 달리다 보니 이제부터는 고층 빌딩숲이 이어진다. 상해에는 30층 이상 되는 고층빌딩이 400개 이상이 된다고 하는데 지금도 서로 경쟁하듯 계속해서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다. 특히나 푸동지구의 동방명주탑 옆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목표로 한창 공사중인 빌딩이 있다. 분명 처음에는 높은 건물들이 올라갈 때 주위 환경과 비교해서 어색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고층건물들이 대단위 단지를 이루고 도시 전체가 새로운 스카이 라인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이곳의 스카이라인은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로 바꿀 것이다. 궁금하다 어디까지 변할지…

상해 마라톤의 응원은 북경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다. 물론 초반 구간에 밀집되어 있지만 단체로 벌이는 응원에서 힘을 얻어 오버페이스를 하기 딱 좋다.

상해 인근에는 산이 없다고 한다. 그런 영향인지 주로, 아니 도시 전체가 평지다. 새로 생긴 도로에는 위로 고가도로가 만들어진 곳이 많다. 주로 곳곳에 고가도로 아래를 달리는 코스가 많은데 고가도로 높이가 너무 높아 괜시리 무섭다. 5km 사이를 두고 물과 스폰지가 놓여있기에 물 보충에 어려움이 없지만, 이곳도 먹을 것은 없었다. 그래도 주로 주변의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과 빵 등의 음식을 나눠주는 친절함이 있기에 인간적이다. 개인적으로 상해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은 북경에 비해 장점이 여럿 있었다. 먼저 제한시간의 여유로움(6시간)과 지루하지 않은 코스가 장점. 번화가, 주택가, 공단, 공원 등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나름대로 아기자기함이 있으며 주택단지에서는 비상금을 가져가서 음식을 사먹을 수 있는 풍족함이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10km 지점 조금 못 미쳐서 만난 상해에서 사업을 하시고 계신 박길수님과 상해의 풍요로움을 즐기는 달리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빌딩숲과 고급 주택단지를 지나 20km 지점까지는 2시간 정도 걸렸다. 아직까지 몸 상태도 좋고 시간 관리도 잘되기에 별 걱정 안 하고 틈틈히 사진을 찍는 유람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제의 음주가무의 후유증이 갑자기 찾아왔다.

그 동안은 멀리 높다란 건물도 달리다 보면 어느새 뒤에 있는 여유로운 달리기를 즐겼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하니 정신이 없다. 앞에 목표 건물이 보여도 계속해서 제자리에 있다. 설상가상으로 같이 달리는 박길수님도 어제의 과음 후유증으로 함께 정신을 못 차리기 시작했다. 둘이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에서 이제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완주가 문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함께 동행한 유성렬님 부부, 대전의 김경옥, 이종옥님이 손을 흔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로서 같은 버스를 탔던 한국 참가자는 최후미에 나만 남았다.

몸이 말을 안 듣고 지치다 보니 갑자기 주변의 택시, 자전거, 오토바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유혹을 떨쳐버리고 어떻게든 나아가야 한다. 다행히 대로에서 벗어나 공단 지역으로 들어서니 코스가 골목 골목으로 꺾여서 이어진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되찾고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춰서 나아간다. 박길수님이 조금만 가면 주택단지가 나타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30km를 지나 얼마 후 드디어 아파트들이 보이고 음식점, 식품점들이 눈에 들어 온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갑자기 힘이 솓아난다.

‘벌컥 벌컥’ 콜라를 한방에 들이 킨다. 쏟아지는 콜라액에 몸 구멍이 따갑지만 짜릿하다. 사막 마라톤을 하다보면 중간에 가끔 콜라를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몸에 좋다는 영양제가 하나도 안 부럽다. 달리기와 콜라의 성분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모르지만, 여하튼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역할을 하는 건 틀림없다.

콜라, 빵, 쌀 과자의 힘으로 앞으로 남은 거리까지 단숨에 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다시금 완주 시간을 계산했다. 30km 지점을 3시간 19분에 통과했고, 간식 먹느라 까먹은 시간을 보충하고자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한 손에는 쌀 과자를 들고 먹으며 달리는 모습에 주로의 마을 사람들은 연신 함박웃음이다. 아이들은 손을 내밀어 하이파이브를 쳐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욱 큰소리로 짜이요, 짜이요(힘내라)를 외쳐준다. 시에,시에(감사합니다) 쌀 과자를 먹으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주거 단지인 아파트 촌을 지나 35km를 지나자 드디어 마지막 관문인 고가도로 직선 코스가 나타났다. 5시간 안에 골인을 하자면 아무리 힘들어도 무조건 달려야 한다. 고가도로까지의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 후 무조건 내 달렸다. 박길수님과 주거니 받거니 서로 끌어주며 이끌어주며 젖 먹던 힘을 토해냈다. 이 마지막 직선로에서는 우리가 앞에 있던 모든 사람을 제치고 40km 지점까지 선두에 섰다. 잠시 스트레칭을 해주고 마지막 남은 2.195km를 달리려는데, 앞에 있는 주자의 허리에 눈길이 꽂인다. 주스병을 끈으로 꽁꽁 묶어 허리 밸트에 연결했는데, 박장대소 한바탕 웃음이 나오고 웃다 보니 힘이 빠진다.

공원입구에서 멀리 골인지점의 빨간색 아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다 왔다는 안도의 한숨과 기념 촬영을 끝으로 마지막 전력질주를 한다.

주로 양쪽으로 늘어선 엄청난 숫자의 응원단과 가족, 아가씨들, 참가자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기분 끝내준다. 역시 이런 맛으로 달리기를 하나보다.

최종기록은 4시간 56분.

고생한 나에게 주최측에서는 커다란 미즈노 가방과 타올을 준비해줬다.

음… 괜찮군, 내년에도 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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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러닝라이프에 기고한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 서로 윈-윈 할 수 있도록 잘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