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여행기

77422226c122f177779040c7a69e5eeb_1590046411_654.png

2014 싱가포르마라톤참가기 - 박성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성배 댓글 1건 조회 13,217회 작성일 14-12-26 00:00

본문


141226박성배싱가포르.JPG


   싱가포르마라톤 완주 후 동료들과 인증샷. 오른쪽 끝이 필자


편집자 주 : 필자 박성배(52) 씨는 40대 중반까지 등산 마니아였다가 홧김에 마라톤 동호인과 벌인 하프마라톤(2005) 내기에 이기면서 마라톤 마니아가 됐다. 2007년에 서브3를 달성했고 2010년엔 보스턴마라톤 참가를 계기로 세계 5대 메이저 마라톤 서브3완주 도전을 시작했다. 같은 해 베를린마라톤과 뉴욕마라톤, 2011년 런던마라톤과 시카고마라톤에서 모두 서브3 기록을 달성해 도전에 성공했으며 한국기록원으로부터 한국 최초임을 인증 받았다(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사례는 없음). 이후 기 완주한 도쿄마라톤이 메이저대회에 편입되면서 세계 6대 메이저 마라톤 완주자가 되었다. 현재는 ‘전 세계 골드라벨 마라톤 서브3 완주’를 목표로 세계 각지를 누비는 중이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시간 45분 48초다.



2014년 마지막 해외 원정인 싱가포르마라톤 참가기는, 앞서 실린 암스테르담마라톤 참가기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회에서 얻은 종아리 부상을 치료하고 재활하는 데 준비기간의 전부를 투자했으며, 참가의 목적도 기록 작성 보다는 재활 성과를 확인하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부상이었다. 종아리가 파열된 10월 19일 이후 장장 5주 동안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다. 그토록 뛰어다녀도 말짱했던 종아리가 사무실에서 걸어다니기도 어려울 만큼 망가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의사는 깁스를 하고 외출을 삼가라 했지만, 뛰는 게 걷는 것보다 편했던 내가 어떻게 가만히 들어앉아있을 수 있겠는가. 평일엔 불편한 다리를 끌고 산책을 했고 주말엔 대회장에 나가 동료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대회 2주 전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할 줄이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11월 23일 YTN 손기정 평화마라톤에서였다. 애초에 완주할 생각은 없었고, 상태를 점검하자는 의도였다. 불과 2~3km 달렸는데도 여기저기 통증이 몰려왔다. 레이스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도 모자랄 판인데,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주위에선 이왕 이렇게 됐으니 한동안 마라톤을 잊고 부상 회복에 전념하라고 했지만, 나에겐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이미 동료 러너들과 2014 싱가포르마라톤 여행 패키지를 구매해놓았던 것이다. 그냥 해외대회가 아니라 내가 서브3 완주 도전 중인 ‘골드라벨’ 대회였고, 취소도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그렇다고 싱가포르까지 가사 남들 뛰는 모습이나 구경하다 올 수는 없는 일. 정말 난감했다.


싱가포르마라톤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주.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상황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희박해보였지만 어쨌든 몸만들기를 시작했다. 11월 24일 피트니스센터 트레드밀에서 시속 11~12km 정도로 달려보았다. 전날 느낀 근육통은 여전했지만 어찌어찌 10km 정도를 달릴 수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비슷한 속도로 비슷한 거리를 달렸다. 10일간 매일 10~15km를 달리고 나니 풀코스 완주는 가능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2도에 육박하는 싱가포르, 5만 3000명의 러너들

 


내 몸의 변화와 상관없이 출국 날짜는 빠르게 다가왔다. 12월 5일 아침 인천공항에서 다른 한국 참가자들과 합류해 싱가폴 창이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마라톤 전문 여행사 에스앤비투어 이용) 비행시간이 6시간 30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위안이 됐다. 가뜩이나 준비가 안 된 몸으로 시차적응까지 해야 했다면 대회에 참가할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지에 도착해보니 상당히 무더웠다. 원래 더운 나라지만 12월엔 23~29도 정도로 야외활동에 무리가 없는데 올해는 평년기온을 크게 웃도는 27~32도에 이른다고 했다. 한겨울 날씨에서 한여름 날씨가 됐으니 레이스에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기록을 노리는 다른 참가자들도 적잖이 걱정을 하는 분위기였다.

 


현지 관광을 한 뒤 다음날 마라톤 엑스포장에 방문했다. 번호표와 기념품(경기복)을 수령한 뒤 함께 간 동료 러너들과 함께 여러 부스를 구경했다. 대형 마라톤대회의 엑스포들은 저마다 큰 규모와 치밀한 운영을 자랑하지만, 싱가포르마라톤의 엑스포는 특히 눈여겨볼 만했다. 메인 스폰서인 아디다스 부스뿐 아니라 작은 규모의 다른 부스들도 모두 둘러보고 나서야 출구가 나오도록 설계해놓았던 것이다. 싱가포르 인구의 주축이 화교(75%)라는 점을 상기했다. 세계 어디를 가나 화교들의 장사 기술은 비상하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나라의 메이저대회도 그런 마케팅 기술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엔 마라토너들의 지갑을 열 만한 마케팅이 너무 없다. 적극적으로 팔지 않으면서 구매력이 부족하다고만 한다. 연중 고온다습한 싱가포르에 5만 3000명의 러너가 몰렸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 마스터스 고수들과 함께. 맨 앞부터 김영갑 씨, 신정식 씨, 필자, 김환목 씨

 


어둠을 뚫고, 다리를 절며 싱가포르를 질주하다


싱가포르마라톤의 출발시간은 새벽 5시. 무더위와 도심의 정체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이 대회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새벽 2시 반에 일어나서 찰밥을 먹고 호텔을 나왔다. 어둠을 뚫고 출발지인 오차드 로드로 가는 길은 묘한 감동을 선사했다. 거리를 점령한 수만 명의 러너들, 그리고 20~30대 젊은이들로 보이는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강물처럼 움직이며 거대한 러닝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호텔에서 일찍 나온 탓에 출발지에서 1시간 정도 대기하고 있다가 5시에 출발했다. 낯선 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어두운 길을 달렸다. 5km 정도 달리니 나보다 먼저 출발한 고수 러너 김영갑 씨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 가벼운 인사를 나눴다. 초반부터 페이스가 떨어진걸 보니 급격한 온도차이 때문에 제 컨디션이 아닌 듯했다.


정신없이 달렸다. 부상부위 상태를 살피며 조심스레 달리려 했지만 막상 출발하고 나니 레이스에 푹 빠져들어버렸다. 아무 생각 없이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며 질주했다. 그렇게 10km 지점 니콜 하이웨이를 지났다.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온도차에 따른 컨디션 저하가 느껴졌다. 그래도 일단은 종아리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고 선전해주었다. 

이스트 코스트 파크를 왕복하는 15~30km 구간은 이전에 출장 와서 아침 조깅을 하던 코스라 익숙했다. 경치는 아주 좋은데 과속방지턱이 곳곳에 있어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는 곳이다. 20km 지점까지 킬로미터당 4분 페이스로 달리는 주자와 동반주를 하다가 이후엔 속도를 늦췄다. 당장은 달릴 만해도 언제 이상신호가 올지 모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불과 2주 전까지 조깅도 어려워하던 몸이니 조심해서 써야 했다. 킬로미터당 4분 20초대로 페이스를 잡고 후반을 준비했다.


 


 

못내 아쉬운 4분, 그러나 서브3 보다 값진 싱글

 


속도를 늦춘 덕인지 큰 고비 없이 35km 지점 마리나 바라지를 지났다. 물론 그 사이에 서브3 기록 달성은 한참 물 건너가 있었다. 불과 몇 분이지만 남은 거리를 뛰는 동안엔 절대 단축할 수 없는 긴 시간. 러너라면 종종 겪는 마라톤 기록의 아이러니다.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40km 지점을 지나 래플스 애비뉴 언덕에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함께 나눔누리런(기부하는 러너들의 모임)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신정식 씨였다. 한국에선 각종 대회 우승을 휩쓰는 초고수이고, 이번 대회에서도 마스터스 부문 우승이 점쳐졌던 주자가 내 눈앞에 있다니!? 보고도 믿기질 않았다 

나란히 달라면서 사정을 들어보니 그 역시 큰 온도차를 간과하는 바람에 컨디션 난조에 빠진 듯했다. 초반엔 순조롭게 선두로 달렸지만 확실하게 단독 선두로 나서려다가 오히려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버린 것이었다. 


그와 함께 남은 거리를 달려 함께 피니시라인을 밟았다. 기록은 3시간 4분 47초. 10km당 1분 10여초만 빨리 달렸으면 서브3 기록이 됐을 아쉬운 ‘싱글’ 기록이었다. 완주메달과 티셔츠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파당(우리나라의 시청 앞 광장과 비슷함)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푸른 잔디가 지친 몸 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듯했다 

어둠속에서 시작해 밝은 햇살을 받으며 마무리한 레이스를 잠시 반추해보았다. 처음부터 앞만 보고 달려 별 어려움 없이 완주했다. 종아리가 회복된 것을 확인했고 무리해서 다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무사히 완주한 게 기쁘기보다는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중반에 조금 더 공격적인 레이스를 펼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필사적으로 재활에 매달린 지난 2주간을 생각해보니 서브3보다 값진 싱글이란 생각이 들었다.[마라토너 박성배의 해외마라톤 완주 기록] 


2008년   도쿄마라톤   2시간 56분 17초   골드라벨
2009년   이브스키마라톤   3시간 18분 10초(건타임) 
2010년   보스턴마라톤   2시간 58분 43초   골드라벨
2010년   베를린마라톤   2시간 51분 26초   골드라벨
2011년   런던마라톤   2시간 53분 20초   골드라벨
2011년   뉴욕마라톤   2시간 48분 58초   골드라벨
2011년   시카고마라톤   2시간 49분 21초   골드라벨
2012년   도쿄마라톤   2시간 53분 14초   골드라벨
2012년   보스턴마라톤   3시간 06분 26초   골드라벨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   2시간 55분 22초   골드라벨 취소
2012년   호놀룰루마라톤   2시간 55분 13초   골드라벨 취소
2013년   샤먼마라톤   2시간 56분 52초   골드라벨
2013년   프라하마라톤   3시간 06분 23초   골드라벨
2013년   베이징마라톤   2시간 51분 14초   골드라벨
2013년   아테네마라톤   2시간 59분 06초
2014년   암스테르담마라톤   2시간 57분 30초   골드라벨 
2014년   싱가포르마라톤   3시간 04분 47초   골드라벨


Copyrights ⓒ 러닝가이드

 




 

추천0

댓글목록

세달사님의 댓글

세달사 작성일

박성배 사장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번에 마라톤 발전을 위해 거금을 기부하셨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장님의 마라톤 및 대한민국 육상발전에 대한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